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리 제국 (문단 편집) ==== 영토 확장 ==== 순디아타 황제가 사망한 직후의 말리 제국은 한동안 제위 계승 다툼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귀족들과 군대, 궁정 노예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일어났고, 순디아타의 아들 왈리 케이타가 '울리 1세'로 새로운 황제로 즉위했다. 14세기 말리 제국을 방문했던 [[북아프리카]]의 여행가 이븐 칼둔은 울리 1세를 훌륭한 통치자였다고 평가했지만 그가 술탄 [[바이바르스]] 시기에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났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작 울리 1세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는 남아있지 않다. 울리 1세를 이어 그의 형제 만사 와티가 세로운 황제가 되었다. 1270년부터 1274년까지 약 5년 간 재위한 만사 와티에 대한 기록은 아예 남아있지 않아 밝혀진 것이 없다. 만사 와티 사후 즉위한 황제는 만사 칼리파였다. 그러나 그는 신하들에게 재미로 활을 쏘는 등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며 폭정을 행하여 민심을 잃었고, 결국 신하들의 반란으로 내쫒겨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만사 칼리파가 쫒겨난 이후 황제로 등극한 사람은 순디아타의 딸 쪽 피를 물려받은 아부 바크르였다.[* 아부 바크르는 말리 제국의 황제들 중 유일하게 외가쪽의 핏줄로 황위를 계승한 인물이다. 나머지는 모두 부계 혈통을 물려받은 이들이 즉위했다.] 아부 바크르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아부 바크르 다음으로 황좌를 거머쥔 사람은 '''궁정 노예 출신'''인 사쿠라였다. 뛰어난 능력으로 혼란스러운 말리 제국 내부를 진정시킨 사쿠라는 해방 노예 출신이라는 극악한 패널티에도 불구하고 제위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으며, 오히려 제국의 영토를 늘리고 지중해권 및 아랍권과의 무역을 대대적으로 진흥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쿠라 황제는 만사 칼리파의 폭정으로 인해 떨어져 나간 도시 [[가오(도시)|가오(Gao)]]를 다시 말리 제국의 영향권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사쿠라는 [[메카]]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불만을 품은 귀족에게 살해당했으며, 사쿠라 황제가 암살당한 이후 황위는 다시 시조 순디아타의 피를 이은 케이타 일족에게 되돌아갔다. 사쿠라 황제 암살 직후 황위를 이은 가오 케이타는 제2대 만사 울리 1세의 아들이었다. 가오 케이타가 죽자 그의 아들 무함마드 이븐 가오 케이타가 새로운 황제가 되었다. 무함마드는 [[대서양]]으로 2차례나 대대적인 탐험대를 파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첫 번째 원정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자 흥분한 무함마드는 2번째 원정에는 아예 자신이 친히 원정대에 참여하여 길을 떠나 대서양으로 향했고, 자신이 돌아올 동안 국정은 순디아타의 형제의 손자인 칸쿠 무사에게 맡겼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원정에서 끝끝내 돌아오지 않자 궁정의 신하들은 자연스레 무함마드가 죽은 것으로 간주했고, 결국 황좌는 그동안 국정을 돌보던 칸쿠 무사에게 돌아가니 이 자가 바로 그 유명한 '''[[만사 무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